93인의 성명서

93인의 성명서》(독일어: Manifest der 93)는 제1차 세계 대전 초기였던 1914년 10월 23일, 독일 유수의 과학자, 예술가, 철학자, 작가들이 독일 제국의 군사행동에 명백히 찬성한다는 뜻을 밝힌 성명서이다. 이 성명서는 독일 전역의 학교와 대학들이 전쟁을 지지하도록 만들었으나, 외국의 지식인들에게는 공분을 샀다.

1921년 《뉴욕 타임스》에 의하면 당시 생존해 있던 76명의 서명자 중 60명이 다양한 수준의 후회를 표했다. 일부는 자신들이 서명한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고 주장했다.[1]

서명자 명단

볼드 처리된 자는 노벨상 수상자이다.

  1. 아돌프 폰 바이어: 화학자
  2. 페터 베렌스: 건축가
  3. 에밀 아돌프 폰 베링: 생리학자
  4. 빌헬름 폰 보데: 미학자
  5. 알로이스 브란들
  6. 루요 브렌타노: 경제학자
  7. 유스투스 브린크만
  8. 요하네스 콘라트: 정치경제학자
  9. 프란츠 폰 디프레거: 화가(오스트리아인)
  10. 리하르트 데멜: 시인, 작가
  11. 아돌프 다이스만, 개신교 신학자
  12. 빌헬름 되르펠트: 건축가, 고고학자
  13. 프리드리히 폰 둔: 고전학자
  14. 파울 에를리히: 세균학자
  15. 알베르트 에르하르트
  16. 카를 엥글러: 화학자
  17. 게르하르트 에서
  18. 루돌프 크리스토프 오이켄: 철학자
  19. 헤르베르트 올덴부르크: 시인, 극작가
  20. 하인리히 핑크
  21. 헤르만 에밀 피셔: 화학자
  22. 빌헬름 율리우스 푀르스터: 천문학자(아인슈타인 등과 함께 전쟁 반대 성명서에도 동시에 서명했음)
  23. 루트비히 풀다: 극작가(유대인)
  24. 에두아르트 게브하르트
  25. J. J. 데 그루트
  26. 프리츠 하버: 화학자
  27. 에른스트 헤켈: 진화생물학자
  28. 막스 할배: 극작가
  29. 아돌프 폰 하르나크: 루터교 신학자
  30.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극작가, 소설가
  31. 카를 하루프트만
  32. 구스타프 헬만: 기상학자
  33. 빌헬름 헤르만: 개혁신학자
  34. 안드레아스 호이슬러: 중세학자(스위스인)
  35. 아돌프 폰 힐데브란트: 조각가
  36. 루트비히 호프만: 건축가
  37. 엥겔베르트 훔퍼딩크: 작곡가
  38. 레오폴트 그라프 폰 칼크레우트: 화가
  39. 아르투어 캄프: 역사화가
  40. 프리츠아우구스트 폰 카울바흐
  41. 테오도르 키프
  42. 펠릭스 클라인: 수학자
  43. 막스 클링거: 화가, 조각가, 판화가, 작가
  44. 알로이스 크뇌플러
  45. 안톤 코흐
  46. 파울 라반트
  47. 카를 람프레히트: 역사학자
  48. 필리프 레나르트: 물리학자
  49. 막시밀리엔 렌츠
  50. 막스 리베르만: 화가, 판화가(유대인)
  51. 프란츠 폰 리스트: 법학자(프란츠 리스트의 사촌)
  52. 카를 루트비히 만젤
  53. 요제프 마우스바흐
  54. 게오르크 폰 파이어
  55. 세바스티안 메르켈
  56. 에두아르 마이어: 역사학자
  57. 하인리히 모르프
  58. 프리드리히 나우만: 정치인, 개신교 목사
  59. 알베르트 나이서: 내과의사
  60. 발터 헤르만 네른스트: 물리화학자
  61. 빌헬름 오스트발트: 화학자
  62. 브루노 파울: 건축가, 화가, 디자이너
  63. 막스 플랑크: 이론물리학자
  64. 알베르트 플론
  65. 게오르크 라이케
  66. 막스 라인하르트: 배우, 영화감독
  67. 알로이스 리흘: 철학자
  68. 카를 로베르트
  69. 빌헬름 뢴트겐: 물리학자
  70. 막스 루브너: 생리학자
  71. 프리츠 샤프너
  72. 아돌프 슐라터: 복음주의 신학자
  73. 아우구스트 슈미들린
  74. 구스타프 폰 슈몰러: 경제학자
  75. 라인홀트 지베르크: 신학자
  76. 마르틴 스판
  77. 프란츠 폰 슈투크: 화가, 조각가, 건축가
  78. 헤르만 수데르만: 극작가, 소설가
  79. 한스 토마: 화가
  80. 빌헬름 트뤼브네: 화가
  81. 카를 폴묄러: 극작가
  82. 리하르트 포스: 극작가, 소설가
  83. 카를 포슬러: 언어학자
  84. 지크프리트 바그너: 작곡가(리하르트 바그너의 아들)
  85. 빌헬름 발다이어: 해부학자
  86. 아우구스트 폰 바서만: 미생물학자
  87. 펠릭스 바인가르트너: 작곡가, 지휘자(오스트리아인)
  88. 테오도르 비간트: 고고학자
  89. 빌헬름 빈: 물리학자
  90. 울리히 폰 빌라모비츠묄렌도르프: 고전학자
  91. 리하르트 빌슈테터: 유기화학자
  92. 빌헬름 빈델반트: 철학자
  93. 빌헬름 분트: 내과의사, 생리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각주

  1. “The Ninety-Three Today” (PDF). The New York Times. 1921년 3월 2일. 7면. A German writer, M.H. WEHBERG, has recently published the results of personal inquiries made of the surviving professors, scientists and literary men who in 1914 signed the famous manifesto of the ninety-three Gelehrten. Seventeen of them have since died, but of this number it was known that several had changed their minds, or at least wished that they had not put their names to a document which was a reproach to German learning. Among the living only sixteen were found to stand by their action in 1914 without wavering, and to say that they would sign the manifesto again. This leaves some sixty of the original ninety-three who now express regret — in some cases amounting almost to remorse. Some of them explain that they did not read or know what they had signed. They gave their names by telephone or telegraph to what they supposed to be a truthful utterance of German university opinion. Later they felt 'keen chagrin' when they found that, with their indignant 'it is not true,' they had been denying facts amply proved. More than one of the signers now has strong words in condemnation of the 'unlucky and senseless' declaration, as it is now admitted to have been, to which they were induced to put their names. This is perhaps the nearest to repentance that we have had or may expect from Germany. Herr WEHBERG records many excuses, some semi-apologies, several expressions of sorrow that the thing turned out so badly; but not one form of the straight-out confession that is good for the soul.